Reflexion Ete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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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種)

내가 사는 곳에서 30분정도 걸어가면 도달하는 산이 있다.  이 산은 경사가 가파르고 대부분 바위로 이루어져 있기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하다.  아니면 단지 그리 아름다운 정경을 지닌 산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산일 수도 있다.  잎갈나무와 소나무, 또는 주목나무들이 즐비하게 산을 가꾸고 있었지만 푸른 색에도 불구하고 거칠고 황량한 느낌을 주는 차가운 산이다.  지방 정부에서도 별볼일 없는 산이라고 판단하였는지 최소의 관리만 유지하였지 일반인들을 위한 산길이나 벤치들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회색 공장들과 굴뚝들로 구성된 이 공업도시에 이 산은 제자리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산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산과 같이 거대한 지형을 우연히 발견한다는 것이 우낀 말이긴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키 높이와 맞지 않는 세상을 흔희 망각하고 산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어쩌면 아이들과 성인들의 세상관 차이는 단순히 눈높이의 차이에서 발생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집을 다시 방문하였을 때 앉은 자세로 이 방 저 방을 둘러 보던 것이 기억난다.  선반 위에 보이지 않던 유리병과 먼지들, 쉽게 열 수 없었던 서랍들, 크게만 보였던 장롱 내부, 가까이 느껴지는 목재 냄새.  과거의 느낌을 현재에 다시 느낄 수 없은 것이 ‘향수’라고 Julian Barnes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과거의 느낌을 현실화하는 것을 초현실적인 행복이라고 하고 싶다.  시간의 흐름을 극복한 행복.  현실을 탈출하고 싶은 장소를 찾다 갈 곳이 결국에는 과거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기에 나는 과거에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탈출.  탈출이란 참 자유스러운 단어이다.  업압과 해방의 대조가 내재되어 있고 두 개념의 다리가 되어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약속과 희망이 함축되어 있는 위로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 무리를 무의식적으로 피하기 시작하였다.  사람이 싫어서이기 때문이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어느덧 나는 나만의 공간을 찾고 지정하기 시작하였다.  일종의 혼자만의 탈출을 실행하고 싶은 것이다.  외부와의 접촉이 최소한이 될 수 있는 집을 찾았고, 주말이면 등산이나 캠핑을 즐겨하였다.  그리하여 우연찮게 알게된 산이 바로 이 산이다.  

나는 한 주말 아침 이 산을 한 번 타보겠다고 나섰다.  간단한 간식과 필수 용품을 챙기고 무작정 시작하였던 것이다.  산의 상태를 판단하기 위하여 사전 검색을 해보았지만 많은 통계적 정보 따위 이외에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없었다.  나는 산기슭에 도달하여 산정상을 바라보았다.  울창한 푸른 나무들에 뒤덮여 있고 군데군데 바위가 튀어나와있는 산은 별볼일 없다기 보다 신비스러운 모습을 띄고 있다고도 생각되었다.  나는 별다른 입구를 찾을 수 없었기에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부터 시작하였다.  

들어선지 얼마 되지않자 우뚝이 선 자작나무들은 서서히 내 머리 위에 지붕을 이루었고, 발 밑에는 과꽃, 담자리꽃, 노루발풀 등등, 그 외에도 이름 모를  여러가지 야생 식물들이 즐비하였다.  새의 지저김 소리도 들리기 시작하였다.  몇걸음 들여놓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세상에 발을 들여 놓은 것만 같은 기분이다.  곧 이어 산은 가파러지기 시작하고 땅은 바위가 돌출하기 시작한다.  발목을 보호하기 위하여 발 한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사람들이 이 곳을 애용하지 않는 것을 대번 알 수 있었다.  조금 지나자 두 손을 이용하여 내 자신을 끌어 올려야 하는 상황도 자주 나타났다.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하고 목은 탔다.  종아리가 뻐근하였고 계속한 급경사에 하부 요통이 조금씩 느껴졌다.  하지만 들려오는 발소리는 나의 것 밖에 없었고 숨소리 또한 나의 것 밖에 없었다.  Thomas Hobbs가 Leviathan에서 인간은 이기적이고 잔인한 동물이기에 법을 강요하는 강력한 군림이 없으면 삶은 비참한 것으로 전락한다고 하였었다.  그 것이 얼마나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가끔 인간이 과연 다른 인간과 같이 살아가도록 뜻해진 것인가 생각한다.  이 큰 공간에 나 홀로 밖에 없다는 생각이 나에게 이토록 행복감과 평화스러움을 주는 것은 내가 인간의 본성에서 가장 충실하거나 아니면 가장 먼 삶을 사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이 것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계속 가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손목에 붙들어 맨 손수건으로 머리의 땀을 닦아냈다.  시계를 내려다 보니 쉴세없이 올라온지 벌써 1시간 정도가 경과되어 있었다.  나는 숨을 되찾으며 뒤를 돌아보니 사방으로 마을이 펼쳐지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나는 평평한 바위를 찾아서 걸터 앉고 챙겨온 음식 먹었다.  저 멀리는 우리 도시의 유일한 다리와 고층 상업 건물들, 수많은 공장과 굴뚝들, 그리고 이 곳의 랜드마크 건물인 거대한 시청 건물이 보였다.  시청건물은 얼마전에 건축 100년 기념식을 한 고풍의 건물로써 웅장한 스케일과 디테일를 뽐낸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지붕이 높은 로비가 맞아준다.  로비의 바닥은 크림색의 테라초로 만들어져 있고 바닥에서 천장까지 대리석의 기둥이 일련하게 솟아 있다.  높은 천장 옆에는 메자닌 발코니가 보이고 섬세한 샹드리에가 빛나는 아트 데코 인테리어이다.  이 도시의 우편엽서나 기념물들을 대부분 이 건물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함 뒤에는 오래된 세월에 의해 마모되고 손상된 건물의 기반이 예산의 부족과 여러가지 문제로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한다.   또한 비바람의 출입을 통제하는 틀마개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에 내부 철구조를 보수하기에는 이미 부식의 상태가 많이 진행되어 있다고 지역신문이 한 때 보도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하여 시민들은 자신들의 비싼 세금들을 들여가면서 이 건물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 마느냐로 갈려서 투표의 의제로 이슈화 되었던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건물은 겉에서 보기와는 달리 속으로는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 많은 건축자제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생각하니 인상이 찌푸려 졌다.  더이상 건물의 실루엣은 아름다워 보이거나 웅장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흉물스럽게 보였다.  이 도시의 자랑스러운 지형지물이라기 보다는 잊고 싶어하는 과거를 항상 상기시켜주는 독촉장과 같았다.  

그 외의 나머지 도시를 둘러보니 고층 상업 건물들과 다리, 공장들, 그리고 가정집들이 가지고 있을 모든 표면적인 문제와 알지 못하는 문제들이 눈에 보이는 듯 하였다.  배수 시설, 지붕, 절연 처리, 환기 장치, 외장용 자제, 배관 등등 이 도시의 미비점과 결함들이 하나의 질병처럼 도시를 휩싸고 있는 듯 하였다.  이 불안정함은 마을의 존재를 위협하는 듯 싶었고 잇따라 삶의 기반 자체를 위태롭게하는 듯 하였다.  나의 생존의 유일한 방법은 이 곳을 재빨리 그리고 가장 먼 곳으로 벗어나는 수 밖에 없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물론 실제로는 이 도시는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이 별 문제 없게 계속하여 존재할 것이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갈 것이고, 건축 구조물들은 건재할 것이고, 나의 증폭된 감성은 잊혀질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었다.  내 물건들을 주섬주섬 줏어 챙기고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조금 지나니 시원한 산들바람이 어디서 부터인가 불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경사도 완만해지고 바위의 표출된 모습도 듬성해 졌다.  나무와 덤불과 높은 풀을 헤집고 나는 한걸음 한걸음 앞서 나갔다.  그러던 순간 어디서 부터인가 물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재확인을 하기 위하여 제자리에 서서 자세히 귀를 기울였다.  물소리는 분명히 들려왔다.  만약 물이 있다면 여태까지 전혀 듣지 못하였던 것이 신기할 뿐이였다.  나는 재빨리 그 곳을 향하여 발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높은 초목들 넘어로 무엇인가 보이는 듯도 하였다.  물소리는 더욱 확실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나는 큼지막한 빈터에 도착하였다.  

호수라고 하기에는 작고 웅덩이라고 하기엔 큰 연못이 내 눈앞에 있었다.  사방으로 수풀이 벽을 이루고 있기에 바깥에서는 보일 수 없는 작은 공간이었다.  높은 곳에서 흐르는 물이 이 연못에 고이고 넘치는 물은 아래쪽으로 흘러내려가는 형식의 구조이었다.  나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였던 이 장면을 어리둥절하게 받아드렸다.  나는 물의 주위를 돌아다니며 관찰하였다.  물은 맑아서 속에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물 속에는 바위들과 그 표면에 있는 이끼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별다른 생물체는 보이지 않는 듯 싶었다.  나는 손으로 물을 느껴보았다.  냉기가 온 몸으로 전해져 왔다.  나는 내 자신을 절제할 수 없었다.  

아무도 없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배낭을 풀어헤치고 옷을 벗어 내버린 다음 나는 물 속으로 첨벙 내 몸을 집어 던졌다.  얼음과 같이 차가운 물의 온도는 뜨겁게 달구어진 내 몸을 순식간에 감쌌다.  뼛속까지의 갈증이 해소되는 감각을 느꼈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잠기어지고 내 몸은 중력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나는 묘한 안락함을 느끼었고 내가 이 곳에 와본적이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어디서 였을까.  이 익숙한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태반 속이었을까.  

나는 이제 내가 왜 이 산을 찾아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 도시에서 살기로 결정하였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이 특정한 시대에 태어났고 내가 태어난 고향에서 출생을 했으며, 내 이름의 의미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왜 인간으로 이 지구해 태어났는지까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용할 수 없는 확신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아직 내가 잠수 상태로 숨을 참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순간 입을 크게 열고 물을 힘껏 빨아들이면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고 허파의 뻐근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곳에 영원히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여는 순간 물은 호흡기관으로 순식간에 밀쳐들어와서 나는 물을 박차고 나와 엄청난 기침을 해대었다.  나는 한참동안 기침을 하고 나서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였을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주말마다 이 산을 찾게 되었다.  물론 매번 찾는 목적은 이 연못을 가기 위한 것이었다.  아침에 일찍 와서 이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어떤 때는 내 집보다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이끼의 부드러움 또는 흙의 쓴 맛이 느껴지는 물의 맛 모두 나를 초대하고 받아드리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이 곳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매번 물 속에서 잠수를 하고 있으면 입을 열고 숨을 들이쉬고 싶은 강력하고 절박한 충동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물론 시도를 할 때마다 나는 몸부림치며 물을 빠져나와 기침하면서 물을 토해내곤 하였다.  항상 후회를 하면서도 머리 뒷전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번 것은 종이장 차이로 성공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비이성적인 생각인 것인지를 떠나서 과연 이 성공이라는 것이 무슨 뜻을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이제 내가 이 연못을 찾는 빈도수는 일주일에 한번을 넘어서 두번, 세번, 네번까지 이르게 되었다.  퇴근을 하자마자 집에 들려서는 간단한 준비를 하고 산으로 곧바로 출발을하곤 하였다.  다음날이 주말인 경우에는 캠핑 도구들을 가지고 가서 밤을 지새고 오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던 산의 지형과 경사가 갈 수록 익숙해지고 나만의 길도 찾기 시작하였다.  내 발 밑에 밟히는 나무 가지들의 부러지는 느낌이 내 거실 바닥의 적막보다 나를 반겨주었고 숲의 캐너피가 콘크리트의 정글보다 안락하게 느껴졌다.  

한 오후, 여느 날과 같이 나는 등산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하늘은 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서 마치 거대한 지붕을 구성하는 듯하게 보였다.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온도는 높았고 공기는 습하였다.  나는 뻐근한 가슴을 어루만지며 산을 타기 시작하였다.  언제서 부터인가 가슴에 압박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숨을 크게 내쉴때마다 통증이 오는 것을 보아 나는 허파에 관련된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마치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거부하듯 숨을 쉬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등산을 할 수 있을까 조금 염려되기도 하였다.  

산의 기슭에 도달하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공장 굴뚝의 매연으로 오염된 빗방울은 나의 머리와 피부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그 자리에는 검은 자국이 남았다.  하지만 나는 개이치 않고 산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풀이나 나무가 나지 않은 자리에는 진흙이 질퍽하게 있었다.  특히 경사진 길은 올라갈 때에는 발 밑에서 땅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발길질을 하여도 땅을 움켜 잡을 수 없었다.  바위를 잡고 몸을 이끌어도 미끌어지기 쉽상이었다.  한두번은 손과 발이 동시에 미끌어져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식물을 움켜잡은 손은 미끄러운 현실을 놓지 않으려는 발버둥과도 같았다.   

곧이어 나는 물가에 도착하였다.  물의 양은 조금 불어있는 듯 하였다.  비는 점점 세차게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가방을 풀어헤치고 옷을 벗어 내렸다.  비에 젓지 않도록 방수 덥개에 접어 넣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물 안으로 첨벙 뛰어 들었다.  요란하게 들리던 사방의 빗소리는 적막이 대신하였고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몸은 차가운 물이 감싸주었다.  바깥 세상과의 급격한 대조는 매번 경의스러운 느낌을 준다.  중력에서부터의 자유스러움이나 오감각에서 부터의 자유는 세상의 모든 기억에서 부터 자유스럽게 해주었다.   

나는 허파의 깊은 속에서 부터 서서히 통증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속은 갑갑해지고 산소의 필요함을 느꼈다.  손과 발 끝에서 톡톡 쏘는 느낌이 왔으며 몸은 점점 발버등 치기 시작하였다.  가슴 위에 큰 바위를 올려놓은 듯한 거북함이 느껴졌다.  나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나는 순간 눈을 부릅뜨고 숨을 크게 들이쉬듯 입을 크게 열어 물을 빨아들였다.

나는 뜨거운 사막에서 오아시스의 찬물을 들여마시듯이 온몸이 반응하였다.  가슴의 통증과 거북함은 서서히 사라졌으며 나의 의식도 또렷하게 돌아왔다.  중추 신경은 몸에서 부터 해방되어지고 세상에 대한 모든 기억도 또한 나의 의식을 놓아 주었다.  니체가 말하였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시간의 이치에 제약되어 있는 인간에 의지 때문에 사로잡혀 있는 ‘죄책감’ 따위는 나에게 더이상 없었다.  과거는 현재에서 해방되고 현재는 시간에서 해방되었다.  나라는 공간은 평면이 되었고 평면은 선이 되었으며 선은 점이 되었고 점은 사라져버렸다.  나는 내 이름을 알지 못하였으며 더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나는 인간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  나는 물고기와 같이 자유롭게 연못을 수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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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나는 영업 시간이 끝난 조만한 기타 상점의 창문 너머로 진열되어 있는 깁슨 기타를 바라보았다. 갈색의 향나무 중견재로 앞이 구성되어 있고 합판으로 양옆이 만들어져 있다. 길다란 프렛보드에서부터 끝으머리의 주축대까지 여성의 아름다운 몸을 보는 기분이다. 어린 시절 악보를 앞에 두고 기타를 한번 배워보겠다는 야심찬 마음으로 기타줄을 어설프게 치다가 고작 한 달 후에 그만 둔 것이 기억난다. 그 이후로 어떻게 보면 핑계이고 어떻게 보면 세월의 물결에 휩쓸려 기타를 다시 손에 잡을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기타를 휘어잡고 기타의 줄의 진동이 나의 심금을 울리는 John Mayer와 같은 공연을 볼 때면 언젠가는 꼭 다시한번 기타를 손에 잡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고 보면 내가 기타 말고도 하고 싶은 것 중에 이 핑계 저 핑계를 두며 하고 있지 않고 있는 것들이 또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이러한 작은 것들이 내가 현재 살고 있지 못하는 평행 우주 속에 인생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않을까. 내가 이 삶으로 가는 간단한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를 미래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포장하고 실제로는 과거에 살고 있는 것이 나의 모습이 아닐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 보니 초등학교 동창 동수가 길을 건너서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것이 얼마만인가.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절친한 사이었으나 나는 6학년 도중 뉴욕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중학교까지 연락을 가끔씩 유지하다가 소식을 도통 듣지 못하였으니 10여년은 넘게 서로를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던 우연치 않게 인터넷의 연락망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다시 알게 되었다. 그도 아니나 다를까 현재 뉴욕에 살고 있다고 하여 우리는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East Village의 자그마한 바로 자리로 옮겼다. 나는 회사에서 곧장 갔어야 했기에 정장차림이었으나 동수는 허름한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테니스화를 신고 있었다. 서로의 모습을 본 우리는 감탄을 하며 서로 포옹을 하였다.

“이야 이게 얼마만이야!”
“그러게 하하 너 예전 모습 그대로인걸”

우리가 자리에 앉자 웨이터는 우리의 주문을 받았다. 동수는 맥주를 시키고 나는 위스키를 시켰다. 동수 예전 보다 살이 좀 쪘지만 눈과 코는 그대로인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니 어렸을 적 같이 학교의 운동장을 뛰어 놀고 서로의 집에서 함께 비디오 게임을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시간이란 것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하지만 버젓한 성인인 우리도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말투나 손짓이 다시 아이같아 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어렸을 적 미국 중부의 한 시골 타운에 살았었다. 타운 뒤로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공기가 맑은 이 곳은 은퇴한 노인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실버’ 타운이다. 한국 사람이 드믈었던 이 곳에 고작 몇 집 건너에 살았던 우리는 어쩌면 친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수는 진실로 활발한 친구였다. 축구나 농구와 같은 모든 운동을 좋아하였으며 자전거를 타고 동네에 이 곳 저 곳을 모두 쑤시고 다니는 아이였다. 그는 대부분 나의 집으로 와서 나를 선동하여 여러 곳을 데려가곤 하였다.

우리 집 사이의 집들 중에 하나에는 한 백인 할아버지가 사셨다. 루이는 나이가 70이 넘으셨지만 아직 정정하시고 유머기가 있으신 할아버지셨다.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기에 혼자 살고 계셨다. 하지만 친구가 많으신 루이는 항상 커뮤니티 센터나 산책을 나가시곤 하셨다. 우리는 그 분이 일요일 아침마다 동네에 있는 커피숍에 가셔서 신문을 읽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수가 이 정보를 나에게 알려 주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아직 침대에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동수가 문밖에 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나는 부시시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동수는 자전거의 의자에 걸터 앉아 있었다. 나를 보더니 그는 주머니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건네 주며 씌익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의 눈을 통하여 그가 무엇인가 계획이 있다는 것을 대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무엇인가 짓궂은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자신을 따라 오라는 시늉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가기 시작하였다. 나는 집앞에 쓰러져 있는 내 자전거를 세워 타고 그를 뒷따라 페달질을 하였다.

그는 루이 할아버지의 집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길가에 자전거를 눞여 놓더니 뒤돌아 나를 한번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현관을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나는 의아해 하며 나의 자전거를 그의 자전거 뒤에 눞여 놓았다. 그는 자신의 집마냥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동수의 교활한 표정을 보았을 때 그가 분명 초대를 받거나 정직한 목적으로 이 곳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있나 확인을 한 후, 불안한 마음으로 현관으로 향하였다. 현관의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몇걸을 올라가서 놓여있는 도어 매트를 바라보니 “Welcome”이라고 씌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빨간 현관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나는 조심스레 머리를 집어 넣었다.

거실은 생각보다 좁았고 전체적으로 정리정돈이 되어있지 않았다. 소파 위에나 거실 바닥에는 옷과 책들이 너저분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동수가 나의 빼꼼이 내민 얼굴을 보자 여태까지 뭐하고 있었냐는 둥 빨리 들어오라는 시늉을 나에게 보였다. 나는 몸을 집 안으로 들여 놓고 문을 닫았다. 집 안에서는 노인의 체취가 코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벽에는 루이와 할머니가 젊었을 때의 사진으로 보이는 것들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수는 텔레비젼 앞에서 무엇인가 바쁘게 조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내 손에 들려있는 비디오 테이프를 뺐더니 테레비젼 위에 놓여 있는 비디어 재생기에 집어 넣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창문 밖으로 할아버지가 오시는 방향으로 연거푸 바라보았다. 그는 텔레비젼 옆에 놓여있는 검은 상자와 같이 생긴 전자 제품의 버튼을 이리 저리 만졌다. 그 상자의 정면에서 보이는 빨간 색의 디지털 숫자가 변했다. 동수가 텔레비젼을 켜니 채널이 빨간 숫자와 동시에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수가 환호성을 지르며 채널을 고정 시킨 것은 다름아닌 성인 채널이었다. 나는 이제서야 이 모든 것이 무엇에 관련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동수는 비디오 재생기의 녹화 버튼을 눌렀다.

“난 루이 할아버지가 참 좋단 말이야. 이 검은 상자가 뭔지 알아? 이 것이 불법으로 케이블 네트워크를 수신하는 거야.”
“넌 도대체 이런 것을 어떻게 알아내는 것이냐?”

우리는 일요일 마다 이렇게 하기를 반복하였다. 처음의 초조한 마음은 서서히 대범해지고 나중에는 아침에 루이 할아버지가 집을 나서기를 기다렸다가 테이프의 녹음을 시작해 놓고 할아버지가 있는 커피숍에서 정황을 보다가 할아버지가 일어나실 쯔음에 자전거를 타고 앞질러와서 비디오 테이프를 수거해오기도 하였다. 우리는 갈수록 쌓여가는 테이프를 가지고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하다가 이 것들은 우리 또래의 엄청난 수요에 비교해 너무나도 희귀한 상품이라는 것을 느끼고 학교의 친구들에게 돈을 받고 대여를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동수의 기똥찬 아이디어였다. 나는 그 때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들이 의식하고 반응하는 세상의 한 부분이 되는 동수의 잠재성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우리는 커피숍의 패티오에서 할아버지가 신문을 주섬주섬 접으며 일어나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자전거에 재빨리 올라타고 할아버지의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경주를 하는 도중, 경쟁심이 심한 동수는 급한 커브길을 무시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았기에 그는 중심을 잃고 자전거와 함께 아스팔트 도로를 훑으며 미끄러져갔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피가 나는 팔목을 잡았다. 나중에 응급실에서 그는 손과 팔의 상처를 치유받았고 부러진 팔목에 기브스를 하였다. 그 이후로 우리는 일요일 아침의 모험을 더이상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수거하지 못한 그 당일날의 2,3시간 량의 비디오 테이프도 어떻게 됫는지 알 수 없었다.

현재 내 앞에서 맥주를 입으로 들어 올려 마시는 동수의 손에서 그 때의 상처는 아직도 희미하게 보였다. 우리는 여태까지 어떻게 지내왔고 요즘은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까지 이야기가 도달하였다. 동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런 저런 전공에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모든 것을 청산하고 현재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순간 그 것이 성인물이 아닐까 생각을 하였지만 동수는 그러한 나의 눈빛을 읽고 큰 소리로 웃으며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오늘 혹시 시간이 되면 자신의 집에 잠깐 들리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하였다. 나는 시간을 보니 9시 남짓 밖에 되지 않았고 내일도 주말이기에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는 대중 교통을 이용할 필요가 없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살고 있었다. East Village의 허름한 건물들을 조금 지나니 놀랍게도 비교적 신식의 로프트 건물들이 줄지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동수는 나의 반응을 보았는지 어렸을 적에 많이 보던 웃음을 나에게 씌익 지어 주었다.

“이 근처가 알다싶이 예술이 많았던 동네잖아. 그래서 돈 없고 예술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살던 동네인데 그 중에서 많은 유명 예술인들이 나오기 시작하다 보니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또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값도 올라가기 시작했지. 그 때 당시 Andy Warhol도 있었고 Velvet Underground도 있었고.”

우리는 어느새 그의 집 현관문에 도달하였다. 계단을 올라가서 이층의 그의 집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실내의 널찍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로프트 식의 실내는 천장이 매우 높았고 비싸보이는 나무 기둥과 마루 바닥이 보였다. 거실과 부엌의 구분이 없었고 부엌에는 그래나잇 탑과 고급 가전제품들이 있었다. 그를 처음 봤을 때 그의 허름한 옷차림을 보고 잘못 판단한 것이 미안스러웠다. 어쩌면 그는 일부러 나를 이 곳에 데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미니바에서 나에게 위스키 또 생각이 있냐고 권하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자신도 냉장고에서 맥주 한병을 꺼냈다. 그는 나를 그의 서재 겸 침실로 인도하였다. 우리는 그의 컴퓨터에 둘러 앉았다. 그의 컴퓨터 시스템은 개인용 컴퓨터라기 보단 상업용 서버와 비슷해 보였다.

“내가 운용하는 웹사이트들을 묘사하자면 괴짜같고 어떻게 보면 장난같게 보일 수도 있어. 너가 비웃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 웹사이트들은 이 모든 것들을 나에게 제공해 주고 있어.”

동수는 자신의 집과 그 속의 가구들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나는 이 시점까지 그의 웹사이트가 도대체 무엇일지 짐작할 수 없었다. 전자 소매업? 옥션? 하지만 그가 자신의 웹사이트를 열었을 때 나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홈페이지의 배너에는 Apocalypse 2012라고 크게 적혀있었다. 그는 나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직접 웹사이트를 둘러보도록 하여 주었다.

나는 목차를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Nibiru, Planet X, 지구의 자전축 반전 이론, Web-bot, The Hopi Indians, Mayan Calender, 요한 계시록, 자연 재해 등등 나에게는 생소한 것들 이었다. 나는 동수가 나한테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그가 내가 이렇게 심각한 얼굴로 이 것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을 것을 기대하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그러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단지 나의 이러한 어리둥절함을 기대했다는 표정 뿐이었다. 나는 최대한 비꼬는 말투로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물어 보았다.

“이게 다 뭐야?”
“다양한 종말론들이지.”
“이 것이 너가 운영한다는 웹사이트야?”
“그렇지. 이 것 말고도 비슷한 종류의 몇개가 더 있어.”
“동수야. 너가 특이한 아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것은 상상 밖인걸. “
“하하 난 너가 이렇게 반응할 줄 알고 있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심각하게 받아주진 않지.”
“가끔가다 이러한 이론을 듣거나 이러한 메세지를 분배하는 웹사이트를 지나치게 되면 항상 생각해왔던 것이 도대체 이러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진심일까? 어떠한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갈까? 분명 컴퓨터 앞에서 인스턴트 음식먹으면서 페인처럼 살찐 사람들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어. 근데 나는 이러한 사람이 바로 너란 것에 더 놀라야 될지 아니면 너의 큰 집에 더 놀라야 할지 모르겠다.”

동수는 나의 반응이 재미다는 듯이 웃으면서 자신의 두번 째 맥주병을 열었다. 그리고는 길다란 소파에 늘어지게 앉았다. 그는 커피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담배갑에서 담배를 하나 빼서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그가 깊이 한모금 빨아들이자 담배의 끝은 빨갛게 타오르고 그는 연기를 자욱하게 내쉰다.

“너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분모가 뭐라고 생각해? 이 곳 뉴요커들로 부터 라파 뉴이의 민족들까지.”
“글쎄.”
“너는 우리가 자나 깨나, 세상의 정상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일 때나 가장 취약하게 느낄 때 우리가 항상 머리 뒷전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모르겠는데.”
“바로 죽음이야. 우리가 걸음 걸이를 할 때 우리의 뇌가 공간의 지각을 자연스럽게 하여서 우리가 무슨 속도로 걸어야 하는지 언제 멈추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듯이, 우리 인생의 걸음 걸이는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을 항상 인식하고 있지.”
“나는 죽을 날을 그리 생각하지 않는데.”
“너는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왜 침대에 남아있지 않았지? 왜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지? 왜 오늘 집을 나서면서 너의 가진 모든 돈을 탕진하지 않고 너의 재산을 청산하지 않았지?”
“그 것은 내가 죽음을 생각해서 그렇다기 보다 삶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만약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삶을 정의할 수 있을까? 죽음과 삶의 구분이 없어진다면 우리가 진실되게 살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미스테리한 개념과 시간적 제한은 우리로 하여게끔 현실에 충실하게 하고 뜻을 창조하려하는 강력한 자극제가 되는 것이지.”
“이 것이 너의 웹사이트와 어떻게 관련이 되는거지?”
“내 웹사이트들을 전부 합치면 일년의 유니크한 트래픽이 이백만명 정도 된다. 그말은 한달에 이만명이라는 말이야. 다시말해서 하루에 700, 800여명이라는 것이지. 이 것은 다시 이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지. 내 웹사이트에 오는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끝을 생각하며 오는 사람들이야. 두려움에 오는 사람도 있고 단지 호기심에 오는 사람도 있지. 내가 제공하는 정보가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근거가 있건, 단지 전설이나 이론에 기반을 두건간에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식욕을 자극하는 구실은 하지.”
“먹고 살기 바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왜 죽음과 종말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모두 죽음의 대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해. 그 것이 사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인생의 지극히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가망성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어. 자신이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아도 일상의 행동에서 묻어나오는 의미들의 뿌리를 쫒다보면 사람들이 나의 웹사이트 같은 곳으로 인도되는 것 같아.”

우리는 그 날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침이나 되어서야 집을 나서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부터 자주 연락을 하면서 지낼 것을 다짐하고 헤어졌다. 나는 느슨해진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구겨진 셔츠를 상관하지 않으며 눈부신 실외로 나왔다. 뉴욕의 길거리는 여느때와 같이 부산하였다. 빠른 걸음을 걷는 비즈니스 정장의 사람들이 길을 메웠다.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택시를 잡으려 잠시 걸었다. 얼마 지나 않자 나는 우연히 어제 보았던 기타 상점에 도달하였다. “OPEN”의 전등에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기타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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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 that is the name of the will’s gnashing of teeth and most secret melancholy. Powerless against what has been done, he is an angry spectator of all that is past. The will cannot will backwards; and that he cannot break time and time’s covetousness, that is the will’s loneliest melancholy.

과거는 의지의 괴로움에 대상이고 가장 은밀한 멜랑콜리이다. 의지는 이미 이루어진 일들 앞에 무력하고, 과거의 모든 것에 대한 관중일 뿐이다. 의지는 과거를 향해 힘을 뻣지 못하고, 시간의 탐욕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이 것이 시간의 가장 외로운 멜랑콜리이다.

니체 (Thus Spoke Zarathu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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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ak what you think now in hard words; and tomorow speak what tomorrow thinks in hard words again, even though it contradict everything you said today

Ralph Waldo Emerson (Self-Reli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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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pproach deep problems like cold baths: quickly into them and quickly out again.

나는 심오한 문제를 냉수로 목욕하듯 대응한다. 재빠르게 들어가고 자빠르게 빠져나온다.

Nietzsche 니체 (The Gay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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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niably, this is an odd world, whether it should have been so or no; and all our speculations upon it should begin with some admission of its strangeness and singularity

이 세상에 대한 모든 고찰은 세상의 괴상함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인정으로 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Bage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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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world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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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entines Special

What is this feeling that I’m feeling? The palpitation of the heart, the restlessness of the fingers, and the directionless and endless pacing of the feet. At time, I would catch myself with untimely sighs, of which the purpose or the origin is unknown, or the sudden halt in the motion midway through eating a meal, as if an invisible food for thought have landed upon me just in the nick of time.

I met a girl a month ago in one of those mysterious ways life weaves the entangled web of chance encounters, with even more esoteric ways two human minds communicate with each other in a langauge unbeknownst even to ourselves, called attraction. She was, and still is, a regular client at a company I formerly worked for a brief time, and ever since the first exchange of contacts amidst a nervous tension and shy glances, we have travelled the gamut of relationship trajectory arriving at where we are now, having frequent sleepovers at each other’s places.

So far so good. However, here is where the problem lies. Most of the time I am in her company, I am utterly preoccupied with the unremitting struggle to decyper the composition of my emotional color I have towards her, as a color-blind person struggles to perceive the true color of shade before his/her eyes, that I am the ghost of my own, unable to be present. One minute I would be content with where we are heading, an immediate moment after, I would be having doubts about the entire ordeal, and soon after, I would be questioning whether this uncertainty is, in fact, a derivation from weighing between a potential love on the on hand, and an unnecessary safeguarding of my heart on the other hand. And then there’s also the possibility that I might just be a lonely soul looking to feel that void with practically anything the way a thirsty Bedouin seeks an oasis in desperation. The mental toggle button becomes maniacal. And then I come to realize that opening up and giving a portion of my heart opens up a whole can of worms, including my past and my subconscious full of unwarrented substances. The subject of scrutiny is no longer her, but my inner self.

If self-awareness is what differentiates us from the rest of the animal kingdom and the singular defining feature of what it means to be a human being, then the concept of “humanhood” should be a fluid one, an entity flowing freely in and out of both realms, those of animal and human. This is because even at times when one attempts most assiduously to employ the faculty of self-awareness, we are, but helplessly entrapped in our own mind and body. Many times have I tried to externalize my inner life before my microscopic eyes, only to find my emotions evasive, fleeting, and very deceiving. What I envisaged and hoped as being genuine feelings would frequently turn out merely to be selfish desires and self-preservation of a wolf cloaked in an infatuating sheep’s fleece.

What, then, IS exactly this objectivity that we are touting, the flower of reason, the pinnacle of a psychological spectrum? Aren’t we all living in our own little bubbles, inventor and imaginator far greater than life, a deceiver of a heart? Moreover, is it really a lie when I truely see the color peachy as a shade of grey? Could the ability to self-aware simply be an illusion created in an attempt to differentiate us from animals, when, in fact, we are one and the same?

When life demands more than honesty, it is easy to get on your plate more than you have bargained for. With such an unresolved mind in the back of your head, it is also easy to forget that you can still enjoy the process. A relationship, a romantic one at that, is certainly an affair not to be taken lightly, but you must still remember to enjoy the journey and, if you are lucky, you might be able to find feelings on the way that are self-evident, visceral and real that come to you without you having to zealously search for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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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영혼 1막 1장

영혼의 순도 from reflexioneternal on Vimeo.



나는 연극이 현실이 아니고 단순히 연기일 뿐이라는 것을 깨닳은 그 순간을 기억한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쌀에 비추어진 그녀의 살결은 고왔다. 그는 시선을 그녀의 갸냘픈 손목에서 시작하여 맑은 색의 목덜미까지 옮겼다. 긴 머리 사이로 힐끔힐끔 보이는 그녀의 흰 목은 내 심장의 구석 어디엔가를 잡아당겼다. 그는 그녀의 블라우스를 머리 위로 벗겼다. 브레지어를 하고 있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그는 잠시 당황하였다. 그녀의 가슴은 방금 막 지어낸 신선한 두부처럼 맑은 색을 띄며 출렁였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청바지를 벗어내렸다. 그들은 곧 하나가 되었다.

우렁찬 목소리, 과장된 몸짓, 이마에 맺힌 땀방울, 그리고 온몸으로 전달되는 발소리의 진동은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그들의 인생에 대한 보여리즘의 쾌락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들의 가장 은밀한 생각을 읽고 그들의 모노그램을 엿들으며 숨겨 놓은 표정을 관찰하고 벌거벗은 모습을 본다. 생각의 씨앗이 마음 속에 심어지는 모습을 엿보고 하고 그 생각이 하나의 울창한 나무로 성장하는 과정을 목격한다. 부정하지 못한 모습을 보고, 배신이 꾸며지는 것을 보며, 홀로 느끼는 승리의 희열을 나눈다. 나는 그들을 만질 수 있고, 향기를 맡을 수 있으며, 공기 속의 열정이 맛으로 느껴질 만큼 친밀한 공간에 있지만, 그들은 나의 시선에 대해 절대 무지하고 자아를 의식하지 못한채 자신의 가슴이 이끄는대로 몸을 맡긴다. 그들이 나를 의식하지 못하기에 그들의 눈물은 더욱 나의 눈물을 자아내고, 그들의 감정은 나의 탄성을 더욱 자아낸다. 나의 시선에 대한 그들의 천진함과 순수함 속에 나는 현실을 보았던 것이다.

숨이 차고 땀에 범벅이 된 그들이 서로에게서 떨어지는 순간 그는 무엇인가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것은 내가 마치 색안경을 끼고 있던 상태에서 벗은 것과 같은지 아니면 반대로 맨 눈의 상태에서 색안경을 착용한 것과 같은지 알 수 없었다. 원래 세상이 이렇게 보였던 것인가. 남들은 이미 다 이러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던 것인가. 사람은 태어날 때 어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태어나는 것인가. 나는 옆에 누워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의 순결을 앗아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숨쉬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내 앞에서 펼쳐지는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연극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목전의 모든 고함, 발소리, 움직임들이 나를 인식한 연기에 불가하였다는 것은 나에게 심한 충격을 안겨 주었고, 그 충격은 곧 나를 실망으로 인도하였다. 이 사실을 깨닳은 이상 나는 더이상 그 이전의 순수함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었고, 내 인생에 잠시 동안 지속되었던 무지의 희열은 그 소중한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현실 보다 허구 속의 현실을 더욱 동경하였던 그 때의 나를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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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What a Tangled Web We Weave!

캐나다의 서부 밴쿠버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향하다 보면 대관령 산맥을 고속도로로 보이게 만드는 로키 산맥의 우여곡절을 만나게 된다. 해발 4000미터를 넘나드는 이 곳은 도로의 난간 넘어로 보이는 낭떨어지를 볼 때마다 사람의 가슴을 쓰러내리게 만든다. 사방의 시야를 가로막는 산들 사이로 구비구비 나 있는 도로의 급한 코너를 돌 때 마다 더 많은 산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다 어느 한 코너를 돌아 정신을 차려보면 거짓말과도 같이 산들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눈앞에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대자연의 절묘하고 극단적인 대조는 마치 앨리스의 원더랜드에서 앨리스가 흰토끼를 쫒다 구렁텅이에 빠져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된 스토리를 연상시킨다.

바둑판과도 같이 기이할 정도로 넙적한 이 평야는 캐나다의 중부인 사스카츄완과 매니토바를 지나 온타리오에 이를 때까지 지속된다. 이 곳을 한참 지나가고 있다보면 곧 말로 형용하기 힘든 장소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구름 한점 없고 빠질 것만 같은 창궁은 내 머리 위에 온 세상을 뒤덥고 있고 까마득히 저 먼 곳에는 지면과 만나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이 지평선은 한 방향으로 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볼 수가 있다. 마치 수천 킬로미터 반경의 아름다운 돔 지붕 아래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이 곳을 신비롭게 만드는 또 하나의 큰 요소는 인적이 드믈다는 것이다. 인적은 커녕 지나가는 차 조차 보기 힘든 곳이다. 아마게돈 이후의 모습 처럼 마치 모든 사람들이 급히 어디론가 사라진 것만도 같다. 야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밀하고 자유로운 느낌이 밀려온다. 마치 즉각 이 자리에 안주하여도 아무런 마음의 거리낌이 없을 것만도 같이.

하지만 이러한 포근한 마음은 어느 순간 서서히 사라진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대칭형인 자연 속에서 굳건하고 확신에 차 있던 나는 마음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방향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특정한 방향이 확실한 것 같으면서도 반대 방향을 바라보면 그 방향이 더욱 옳은 쪽 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하늘을 바라보니 태양마저 중천에 떠 있어 방향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좀 전까지만 해도 자유러웠던 이 거대한 장소는 곧 하나의 감옥이 된다. 방향 감각의 상실은 나로 하여게끔 어떠한 방향으로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게 만든다. 여태까지 달려왔던 여정의 타당성이 소멸되고 가슴 속에 타고 있던 열정의 불은 때울 장작이 동나면서 헛된 빛을 발하게 된다.

가슴이 뛰는 것과 그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믿음으로 이 곳까지 왔다. 나는 현재 인생의 이 곳에서 더이상 내가 믿어왔던 것에 대한 신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기가 힘들다. 더이상 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기가 싫다. Walter Scott의 시 중에 이러한 부분이 있다.

“Oh what a tangled web weave we,
얼마나 얽힌 그물을 우리는 짜내는가
when first we practice to decieve”
우리가 처음 속이기 시작할 때

거짓말은 꾸며내고 타당성을 유지하려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실은 자명하다. 거짓말의 그물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방향을 잃은 나의 모습이 절망스럽다.